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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어웨이 브라이드와 나의 정체성 찾기 (계란, 자아, 여성영화)

by buysee 2025. 4. 15.

나는 오래도록 내가 뭘 좋아하는지도 모르고 살았다. 무슨 음식, 어떤 노래, 어떤 삶이 내 것인지 스스로에게 묻지 않았다. 사랑이라는 이름 아래, 타인의 기준 속에서 나를 잃는 법만 배웠다. 그러다 어느 날, 영화 ‘런어웨이 브라이드’ 속 계란 장면 하나가 나를 멈춰 세웠다. 단순히 계란을 어떻게 먹는지를 묻는 장면에서 나는 통째로 무너졌다. “나는 진짜 나로 살아온 적이 있었나?” 이 글은 그 질문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아주 솔직하게 말하고 싶다. 이건 영화 이야기가 아니라, 나의 이야기다. 그리고 당신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런어웨이 브라이드와 나의 정체성 찾기 (계란, 자아, 여성영화)

계란: 나는 무엇을 원하나요?

처음 그 장면을 봤을 때, 내 안에서 뭔가가 무너졌다. 브라이드가 말한다. “나는 내가 어떤 스타일의 계란을 좋아하는지도 몰라.” 순간 내 머릿속에도 질문이 튀어나왔다. ‘나는 어떻게 먹는 계란을 좋아하지?’ 그 한 문장이 내 모든 연애, 내 모든 선택, 내 모든 거짓된 ‘나’를 돌아보게 했다.

나는 상대가 매운 걸 좋아하면 매운 걸 따라먹었고, 누군가가 듣는 노래를 내 취향인 줄 알았고, 그가 좋아하는 계란을, 마치 내가 좋아하는 것처럼 굽고 삶았다. 한 번도 ‘나는 뭘 좋아하는 사람인가요?’라는 질문을 내게 던지지 않았다. 그저 사랑받고 싶어서, 인정받고 싶어서, 누군가의 세계에 나를 끼워 맞췄다.

계란은 단지 계란이 아니었다. 그건 내가 만든 나, 혹은 내가 잃어버린 나였다. 나는 결국, 어떤 삶이든 내가 선택해서 만들어야 한다는 걸 너무 늦게 깨달았다. ‘계란을 어떻게 먹을지’부터 다시 시작해 보자. 진짜 나를 찾는 건 그렇게 작은 질문에서 시작되니까.

자아: 나로 살기 위해 사랑을 멈추다

나는 사랑에 빠지면 내가 사라지는 사람이었다. 그 사람의 리듬에 맞춰 숨을 쉬었고, 그의 하루에 나를 맞추기 위해 내 삶의 속도를 늦췄다. 나를 좋아하길 바라는 마음이 결국 나를 없애는 쪽으로 나를 끌고 갔다. 사랑은 주는 게 아니라, 내 존재를 증명하는 수단처럼 변질되어 갔다.

브라이드가 결혼식장에서 도망치는 모습은 겁쟁이의 뒷모습이 아니다. 그건 진짜로 나를 지키기 위한 ‘선언’이었다. 사랑보다, 관계보다, ‘나를 먼저 알아야겠어’라는 확신의 몸짓. 나는 이 장면에서 울었다. 내가 얼마나 많은 관계 속에서 침묵했는지, 얼마나 많은 순간을 ‘괜찮은 척’하며 지나쳤는지를 생각하니 내가 나를 너무 방치해 왔다는 사실에 숨이 막혔다.

이제는 안다. 누군가를 사랑하기 위해 내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나를 사랑해야 누구도 쉽게 무너뜨릴 수 없는 내가 된다는 것. 그 이후의 사랑은, 그제서야 가능해진다.

여성영화: 도망이 아니라 시작이었다

‘런어웨이 브라이드’를 보고, 처음엔 그녀가 비겁하다고 생각했다. 사랑이 두려워서 도망친 여자가 아닌가? 하지만 다시 보니 전혀 달랐다. 그녀는 도망친 게 아니라, 멈춰 선 것이다. 그동안 누구도 묻지 않았던 질문을 던지기 위해. “나는 왜 이 결혼을 하려는 걸까?” “이 삶은 진짜 내 것일까?”

여성 서사가 변하고 있다. 과거의 영화 속 여성은 늘 누군가를 기다렸다. 왕자, 고백, 반지. 그러나 이제는 기다리지 않는다. 찾아간다. 나를. 내 삶을. 내 소리를.

브라이드는 더 이상 사랑받는 캐릭터가 아니다. 그녀는 자기 자신을 구한 인물이다. 그리고 나는 그 모습에서, 나도 그렇게 살아갈 수 있겠다는 힘을 얻었다.

우리는 이제 당당히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사랑보다 먼저, 나는 나로 살아야 한다고. 그리고 그 여정을 시작하는 건 결코 이기적인 일이 아니라고. 그건 인간답게 살아가겠다는 다짐이자 선언이다.

나는 이제 계란을 그냥 먹지 않는다. 스크램블, 반숙, 오믈렛—뭐든 내가 먹고 싶은 방식으로, 내가 원하는 시간에 만든다. 이게 사소해 보일 수 있다. 하지만 그건 내 삶의 주도권을 되찾은 하나의 상징이다. ‘런어웨이 브라이드’는 더 이상 영화가 아니다. 그건 내가 살아온 시간이고, 이제 살아갈 방향이다.

그리고 묻고 싶다. 당신은 어떤 계란을 좋아하나요? 진짜로요. 누군가와 함께 있을 때 말고, 당신 혼자일 때, 당신의 기분대로. 그걸 모른다면, 지금이 그걸 찾아야 할 순간입니다. 이제, 당신 차례입니다. 도망치는 게 아니라, 시작하는 겁니다. 당신의 인생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