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언제부턴가 ‘결혼’이라는 단어 앞에서 숨이 막혔다. 축하 대신 조급함이 따라붙고, ‘언제 할 거야?’라는 질문이 내 인생의 속도를 대신 정하려 했다. 그때, 브리짓 존스를 만났다. 그녀는 답을 주지 않았다. 대신, 질문을 바꿨다. “그 결혼, 정말 너의 선택이야?” 지금 우리는 살아가며 더 자주, 더 깊게 묻는다. 사랑을 위해 자신을 잃을 수는 없다고. 이 글은 브리짓 존스라는 한 여성의 일기를 따라, ‘결혼보다 먼저 찾아야 할 나 자신’에 대해 말한다. 아니, 당신의 이야기를 꺼내보자는 제안이다.
브리짓존스: 결혼이 전부는 아니다
솔직히 말해, 나는 한때 결혼을 로망이라 생각했다. 하얀 드레스, 웨딩홀, 부케를 받는 순간까지. 하지만 어느 날, 그 로망이 '해야만 하는 일'이 되었을 때부터 이상해졌다. 주변에서 들려오는 이야기들—“여자는 서른 넘으면 힘들어”, “지금 안 하면 늦어”—그 말들은 사랑보다 훨씬 무거웠다.
브리짓 존스는 그런 시대의 틀 안에 ‘나는 아니야’라고 말한 여자다. 실수하고, 망가지고, 우스워 보이지만, 끝끝내 자신을 포기하지 않는 사람. 그녀는 사랑받고 싶어 하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걸 안다. 그녀의 가장 큰 매력은 ‘사랑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게 아니라, ‘사랑을 기다리는 동안에도 나는 계속 내 삶을 살아간다’는 태도다.
사람들은 아직도 말한다. 브리짓은 엉망진창이라고. 하지만 나는 다르게 본다. 브리짓은 엉망인 채로도 삶을 꿰뚫어 나간다. 아픔을 무너짐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자기 이야기의 일부로 품는다. 결혼은 해도 좋고, 안 해도 괜찮다. 중요한 건 내 삶을 누가 대신 살아줄 수 없다는 확신이다.
독립: 혼자서도 괜찮은 삶
나는 혼자가 두려웠다. 누군가와 같이 있으면 삶이 덜 외로울 줄 알았다. 하지만 이상했다. 오히려 함께 있어도 허전한 순간이 더 많았다. 그러다 어느 날, 혼자 밥을 먹고, 혼자 여행을 가고, 혼자 집을 꾸며가는 순간들 속에서 깨달았다. ‘혼자인 게 아니라, 나랑 함께 사는 중’이라는 걸.
브리짓 존스도 혼자였다. 하지만 그녀는 혼자라는 이유로 작아지지 않는다. 오히려 혼자서 더 분명해진다. 좋아하는 음악, 싫어하는 일, 어울리지 않는 사람들을 골라내며 스스로에게 맞는 삶의 속도를 찾는다. 그런 그녀를 보며 나는 생각했다.
진짜 독립은 경제적인 것 이전에 감정적인 것이다. 누군가가 있어야만 안심되는 상태를 벗어날 때, 진짜 자유가 온다.
나는 이제 혼자여도 괜찮다고 말할 수 있다. 아니, 혼자여서 더 좋다고도 말할 수 있다. 그건 이기적인 게 아니라, 솔직한 거다. 나를 누구보다 소중히 대하겠다는 약속이니까. 그리고 그 약속을 처음 지켜준 사람이, 바로 나 자신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부터, 나는 나에게 진심이 되었다.
연애: 사랑은 선택이지 숙제가 아니다
사랑, 한때는 인생의 중심이었다. 누군가에게 선택받는 게 곧 내 존재의 증명 같았고, 그래서 너무 많은 걸 버렸다. 취향도, 시간도, 나 자신도. 하지만 이젠 안다. 연애는 나를 더 멋지게 만들 때 비로소 가치가 있다.
브리짓 존스는 누구보다 사랑을 꿈꿨다. 그러나 그녀는 사랑을 위해 자신을 지우지 않는다. 연애가 꼬이고, 오해가 쌓이고, 상처받아도, 그녀는 스스로를 다시 사랑하는 법을 잊지 않는다.
이제는 말할 수 있다. 연애는 ‘해내야 하는 과제’가 아니라 ‘함께 나누고 싶은 감정’이다.
누군가의 이상형이 되기 위해 다이어트를 하고, 눈치를 보고, 불안에 시달리는 사랑은 오래가지 못한다. 사랑은 나를 위해 하는 거다. 나를 더 나답게 만드는 사람이 있다면, 그게 연애의 시작이다.
그렇지 않다면, 미련 없이 돌아서도 괜찮다. 사랑보다 먼저 나를 지켜야 하니까.
결혼을 하지 않아도, 연애를 하지 않아도, 누구의 아내가 아니어도 나는 충분하다. 그리고 당신도 그렇다. 브리짓 존스의 삶은 화려하지 않지만, 그래서 더 진짜다. 그녀는 누구도 아닌, 자기 인생의 주인으로 살아가는 법을 보여줬다.
이제 당신의 차례다. 누가 뭐라 하든 상관없다. 당신의 이야기는 오직 당신만이 쓸 수 있다. 그럼, 이제 묻겠다. 당신은 누구인가? 그리고… 어떤 삶을 살고 싶은가?